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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벌새> 김보라 감독의 차기작,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수록작품 영화화

 

 

 

오늘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영화 <벌새>로 본인의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보라 감독이 차기작을 확정한 것이다. 심지어 그 작품이 김초엽 작가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스펙트럼>이라는 단편이다.

 

김보라 감독은 이 책을 작년 <벌새> 개봉 당시 선물로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 읽었으며, 굉장히 슬프고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다 읽은 후에 먹먹하고 설레었던 작품을 영화화하게 된 것은 레진 스튜디오에서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았던 단편을 콕 집어 제안했기에, 감독은 이를 두고서 어떤 동시성의 법칙일지도 모른다고 평했다.

 

이제 제작을 확정 지은 것일 뿐 앞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일부터 시작해 많은 과정이 남아 있지만, 주목받는 여성 작가와 여성 감독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김초엽 작가에 대해 소개하자면,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7년에 제2회 한국 과학 문학상에서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두 작품으로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단편들이 실린 첫 소설집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10만 부 판매를 돌파한 것이다. 요즘 출판시장에서 첫 책이 10만 부 이상 판매된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정말 유의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김초엽 작가에 대해서 더 서술하자면 그녀는 1993년생이다. 포항공과대학교(일명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졸업했다. 원래 책과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대학생이 될 때까지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올해 2020년에는 문학동네에서 주관하는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는 작가가 되어 있으니, 글을 쓰게 될 사람은 정말로 쓰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는 건 한국문단 내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작가가 되었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에야 순문학과 장르의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해졌기도 하지만 출판계 내에서까지 모든 구분이 사라진 건 아니기 때문에, 예술계 지원사업이나 당장의 원고료만 해도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와중에 김초엽 작가는 문단 내에서의 작품성과 밖에서의 대중성을 모두, 비교적 성공적으로 쟁취한 셈이다.

 

 

 

 

 

 

영화로 만들어지게 될 단편 <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작품은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만남을 그린 SF소설이다. 그 만남으로 인해 화학적으로 발생하는 소통과 감각과 언어와 교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보라 감독의 말대로 아주 슬프고도 아름다우며,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면 가슴이 아주 먹먹한 소설이다. 외계 지성 생명체와 처음으로 접촉한 지구인 생물학자, 화자의 할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어째서 그 행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나.

 

소설 속에는 이런 구절이 쓰여 있다.

 

 

'루이의 선량함을 생각할 때면, 나는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작고 단절된 마을을 상상한다. 할머니는 무력하고 유약한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환대받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고작해야 그들의 어린 개체만 한 몸집에 그들을 해칠 만한 어떤 힘도 무기도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져갈 것이다. 그들의 관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그들의 문자를 분석할 것이다.

루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