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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로나 시대에 추억해보는 일본여행 : 후쿠오카편

 

 

 

언제 다시 외국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년에 다녀왔던 일본 여행기를 써보기로 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였으니 지금으로선 1년이 조금 지난 이야기다. 나는 샤넬 가방을 사 오라는 엄마의 특명으로 항공권을 지원받아 후쿠오카로 갔었다. 특별히 일본에서 샤넬이 저렴해서가 아니라, 그저 한국에서는 도무지 마음에 드는 모델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애인은 이런 이유로 외국을 나갔다 오는 게 참 사치스럽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다녀오기에 후쿠오카만 한 곳이 또 있을까? (당시 홍콩은 반정부 시위가 점차 격해지던 상황이었다)

도쿄나 오사카보다도 저렴한 항공권을 쉽게 구할 수 있고 2박이나 3박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돌아갈 수 있으며 효율적인 동선으로 웬만한 쇼핑이 전부 가능하며 교통편이 아주 편리하고 한국인 여행자가 많고 치안이 좋아서 여자 혼자 가볍게 다녀오기에 후쿠오카는 정말 적합한 곳이다.

 

일정상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다. 때문에 관광을 할 것인지 쇼핑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쇼핑과 츠타야 서점을 택했다.

 

 

 

 

 

 

일본 여행에서 츠타야 서점을 빼놓은 적은 단연코 없었다. 서점이지만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공간이랄까, 음식 서적 코너에서 책에 등장하는 발사믹 소스를 함께 놓고 팔거나 인테리어 서적과 관련된 소품들을 책과 같이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주 인상적이다. 조명은 언제나 주광색의 은은하며 매장 한쪽에는 무조건 스타벅스가 입점되어 있다. 일종의 북카페인 것이다. 지금은 교보문고도 그런 특성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 같지만 츠타야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정말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미 스타벅스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곳을 충분히 찾아갈만하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거리에 있는 매장과 다르게 비교적 독서하기 좋은 분위기이고 책을 읽지 않더라도 공부를 하거나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한 환경이란 건 도심에 사는 사람으로선 쉽게 가지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언젠가 일본에서 살게 된다면 그건 소규모로 골목골목 발달한 카페 문화와 츠타야의 존재가 분명 크게 작용한 결과임은 분명하다.

 

 

 

 

 

 

서점에서 나왔는데 비가 내리기에 찍어본 작은 사거리. 언듯 한국 거리 같으면서도 일본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길을 지나서 미리 알아두었던 비건 식당으로 향했다. 거리가 꽤 되었지만 후쿠오카는 지하철보단 버스 노선이 잘 되어 있어서 다니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가게는 지금으로선 정확한 상호나 주소가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하카타역 근처 비건 식당을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유의 앤틱한 분위기와 맛있지만 알 수 없는 맛의 비건 음식과 오로지 일본어로만 적혀 있는 메뉴판 틈에서 간신히 망고 푸딩과 오렌지 주스를 후식으로 주문할 수 있었다. 새삼 비건 식당이 한국에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 치킨 삼겹살에 열광해서 늘어나는 건 치킨집과 고깃집들 뿐이지만 말이다. 다들 매일같이 그런 것만 먹고살아도 괜찮은 걸 보면 대체로 소화력이 좋은가 보다.

 

점심을 먹고 쇼핑몰에 있는 러쉬에 들러 입욕제를 샀다. 일본에 생산공장이 있어서 그런가 한국이랑은 가격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모든 일본 호텔에는 욕조가 반드시 설치되어 있기도 하니까, 웬만하면 이곳에 올 때마다 매일 밤 반신욕을 한다. 굳이 러쉬가 아니더라도 드럭스토어에서 파는 천 원이나 이천 원 정도의 입욕제도 충분히 좋다. 장기여행일 때에는 이쪽을 애용한다. 역시 온천의 나라.

 

 

 

 

 

 

맥주를 가지고 들어갈까 하다가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우유로 방향을 틀었다. 집에서야 가족이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다지만 역시 혼자서 여행 왔다면 조금은 몸을 사리는 편이 좋다. 괜한 위험은 감수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다. 따뜻한 물에 잠겨 시원한 우유를 마시니 정말 여행을 왔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었다.

 

사진 속 우유는 '메이지 맛있는 우유' 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우유와 같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우유라고 생각하면 된다. 팩우유임에도 원유의 풍미가 느껴지는 게 특징으로, 일본 어느 편의점이든 비치가 되어 있어서 골라보았다. 이렇게 우유를 마시는 것으로 첫째날을 마쳤고, 둘째 날에는 정말 발에 땀을 내가면서 쇼핑을 했다. 그때의 쇼핑 목록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걸 기록할 정신도 없이 다녔던 것이다.

 

고작 사흘 머물렀을 뿐이지만 일본 젊은 사람들이 어째서 후쿠오카를 선호하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곳에 비하면 비교적 주거비가 저렴한데, 그럼에도 일할 곳이 많은 대도시이며, 세금 또한 저렴하다고 한다. 또한 도시 자체가 콤팩트한 사이즈이기 때문에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모든 게 해결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확실히 젊은 직장인들이 살기 좋은 곳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