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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금도 쓸 만한 카메라 - 리코 GR2 1년 사용기

 

 

 

이 카메라가 출시된 건 2015년 8월의 일이고 지금은 2020년이다. 현재는 중고라면 몰라도 새 제품으로 이걸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구식 모델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작년에 GR2를 구입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카드로 60만원을 결제했으니 100만원 언저리였던 출시가를 생각한다면 가격 자체에는 만족하는 편이다.

 

(2020.08월 가격을 확인해보니 작년에 비해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온라인에서 더 비싸게 팔고 있으니, 직접 파는 곳을 알아본 뒤 찾아가서 사는 걸 추천한다.)

 

 

 

 

생긴 것 자체는 90년대나 2000년대 언저리의 카메라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다. 렌즈 교환은 불가능하다. 줌도 되지 않는다. 이게 어떤 사용자들에게는 단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장점으로 다가오는 특성들이다.

 

애초에 나는 렌즈 교환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일체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인데, 이 리코 GR2는 그 부분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보기엔 허술한 플라스틱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막상 만져보면 굉장히 견고하고 단단하다. 그에 비해서 251g이라는 무게는 내 핸드폰(아이폰 xs max)과 비슷한 정도이다. 핸드폰을 하루 종일 손으로 들고 있는 걸 생각하면, 주로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한 번씩 꺼내서 찍는 카메라로써는 더할 나위 없는 무게인 것이다. 그리고 줌이 되지 않는 단렌즈는 줌렌즈에 비해 화질이 선명하고 조리개 값이 훨씬 밝다고 한다.

 

 

 

 

 

 

 

부산 영도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걸 보자마자 카메라를 꺼내서 전원을 켜고 순간을 포착하기까지 정말 찰나의 시간이었다. 리코 GR2가 스냅사진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이 특성 때문일 것이다. 웬만한 작동이 미니멀하달까, 손쉽고 간편하다. 버튼을 누르면 금세 전원이 켜지고 빠르게 노출과 조리개 값을 정한 뒤 셔터를 누른다. 터치패널의 카메라를 써본 적 있지만 이것 만큼 손에 감기는 모델도 드물다.

 

단점이 있다면 흐리고 어두운 날에 약하다는 것일까? 저 사진 속 날도 햇볕 하나 없이 구름 낀 날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사진에 느껴진다. 그것마저도 장점으로 본다면 장점이지만, 날씨와 조명에 상관없이 쨍하고 선명하고 밝은 사진을 좋아한다면 다른 제품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 

 

 

 

 

 

 

그리고 색감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 넘어갈 수는 없다. GR2가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포지티브 필름 모드"가 굉장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3세대에서는 색감이 조금 달라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2세대의 느낌을 찾았던 사람들이 그것을 되팔고 이전 모델로 돌아오는 경우를 보았다. 그 정도로 이 필름 모드를 좋아하고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게는 너무 불그스름하다. 굳이 취향을 따지자면 나는 좀 더 초록빛이 감도는 청량한 느낌의 사진을 선호하는데, 포지티브 필름 모드는 굉장히 딥한 느낌이다. 대비 자체가 강하고 사진 전반적으로 붉은기가 살고 초록색은 물을 빼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냥 자동모드로 구도만 잡고 찍어도 이렇게 결과가 좋게 나오는 편이다. 이후에 밝기와 대비 정도만 조정해줘도 완성도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있어 보인다니, 사기를 치는 것 같지만 웬만큼 이상한 구도만 아니라면 정말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세부적인 조정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동모드에서도 충분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카메라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작년 겨울에 찍었던 카페 사진을 올리며 글을 마무리한다.